경주 남산의 봄은 여물어 가고 --- !
경주 남산은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의 남쪽에 솟아있는 금오산과 고위산의 두
봉오리를 비롯하여 도당산, 양산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틀어 남산
이라고 부르게 된다. 산은 그렇게 높지 않으나 동, 서로 가로지른 길이 4km
남북거리 8km에 40여 계곡이 있고 이곳에 수많은 불적이 산재되어 여러 전설
과 실화들이 깃들여 진다.
신라전설이 깃던 나정, 신라왕실의 애환이 서린 포석정 터, 김시습이 거쳐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하였다고 하는 용장사터(龍長寺攄)
등, 많은 신라시대 유적을 간직하게 된다. 또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한후 남산
은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 되어 많은 사찰과 탑이 건립되고 불상이
조성되게 된다.
현제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이곳은 122여개소의 절터, 57여개소의 석불,
64여기의 석탑이 산재하고 명실상부한 야외 박물관으로 불려 지고 있다.
2,000년 12월에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게 된다.
왕능의 옆 울창한 명품소나무의 아래에는 영화 촬영을 위한 단역배우들과
스탶들이 대기하고 있다. 영화제목은 " 벽유천 " 이곳에서 한판 칼부림의
잔혹무비한 영상이 찍혀질 모양이다.
정오의 온화한 태양이 경주남산의 금오봉 진입 명품 소나무 아래, 뭔가의 역사가
벌어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발끝 동작하나 하나마다 깊숙히 침투하여 머문다.
오늘의 단역 리딩-롤(leading-role)을 담당항 배역진들이 촬영에 앞서 서로간의
분담역할을 의논 한다.
금오봉 진입 데크길 좌우에는 울창하게 뻗어 오른 명품소나무가 즐비하며
소나무 사이에 군락을 이룬 4월 초순의 진달래 꽃이 손짓하며 유혹한다.
계절의 시절인연을 잊지 않고 찾아드는 2011년 04월10의 시계침은 남산
금오봉 위를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다.
오르는 길 왼쪽에는 머리를 잃어버린 석가본존불의 지긋한 모습이 아래를
내려다 보는듯 하다. 어쩌다 이런 모습으로 변했는지 배불사상의 훼손으로
파괴된 흔적이 뚜렸하다. 진작 본인의 사상은 무색성향미촉법(無色性香味
觸法) 무 차별과 구분을 강조하지만 법을 전수 받는 이들에의거 역논리의
아이러니(Irony)로 되갚음 당한다.
경주남산은 입산하면 바로 나타나는 통일신라의 천년 불교예술을 산에 오르며
예사롭지 않게 맞이하게 되는 야외 박물관 이다. 삼능계곡의 석가여래상이 바위
에 새겨지며 암각화된 한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교육의 장이된다.
계곡의 이곳저곳에는 진달래 꽃, 목련꽃, 개나리꽃, 산수유 꽃이 한창이다.
몸에 좋다는 산수유 꽃 --- 봄은 역시 노란색이다.
삼능계곡 선각육존불이라고 하며 두개의 바위면에 선각으로된 여섯분의불상
이 새겨져 있는데,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대좌에 앉아 있다. 머리둘레에 두광(頭光)만 새기고 몸둘레에 신광(身光)
은 새기지 않았다. 왼손은 무릅에 얹고 오른 손은 들어 올린 모습이다. 그좌우
연꽃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 3개를 꿰어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분이
서 있다. 이 세분을 석가삼존불이라고 한다.
앞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 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꽃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에 오른 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하며 두광
(頭光)만 조각되여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은 웃옷을 벗고 한쪽 무릅을 세운 모습을
하고 있다. 손에는 꽃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데 두광만 조각되였으며 목에는 구슬
2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였다. 이를 아미타 삼존불이라고 한다. 오른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을 세운 흔적이 남아 있다.
남산의 삼능계곡 중부능선 쯤에 위치하고 있는 삼릉계석본좌상은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며 불상은 눈,코,입, 들의 파손이 심각하여 이들 대부분을
복원하게 되며 불두와 불상을 따로 제작하여 복원하게 되다. 8-9세기 통일 신라
시대 때 제작된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맞아 찾아온 이곳 남산의 450고지에는 봄기운 완연한
아지랑이 따뜻한 기운 속에 작은 산사의 암자가 고개를 내 민다. 그곳에는 부처
님 예경의 독경 염불이 은은하게 들려져 온다.
삼정암의 곁에는 개화를 기다리는 벚꽃나무 시절인연을 기다리고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오색등이 사람들의 마음을 축제 분위로 몰고 간다.
한숨 돌려 위를 쳐다보면 까마득히 정상의 금오산 금오봉이 거대한 암벽의
위용을 과시한채 주눅들게 한다. 삼정암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 한모금으로
또다시 오르고자 하는 의욕에 불탄다.
금오봉의 거대한 암벽 정상에 오르기 전에 만나게 되는 동남쪽을 향해 서있는
삼능계곡 마애석가 여래좌상이 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흡사 금오봉 정상에
오르기 전에 구분이 없는 공(空)한 빈마음을 채우기를 소망한다. 이불상은
남산의 북쪽 금오봉(金鰲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작은 봉우리를
형성한 바둑바위의 남쪽 중턱에 위치해 있게 된다. 자연 암반을 파내어 광배
(光背)로 삼았는데 깍아내다 그만둔듯 거칠다.
높이 7m로 삼능게곡에서는 가장 큰 불상이며 남산의 북봉 금오봉을 향해 앉아
잇다. 머리는 입체불에 가깝고 아래는 선으로만 조각되여 있다.
풍만한 얼굴에 눈섭은 둥글고 눈은 반쯤뜨며 입은 굳게 다문다. 긴머리에 턱은
주름지고 귀는 어깨까지 큼직하다. 옷은 양어깨에 걸쳐져 있으며 가슴부분의
벌어진 옷사이로 속옷의 매듭이 보인다. 오른 손은 엄지와 둘째,셋째 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무릅에 얹어 결가부좌한 양다리의 발 표현과 연꽃
대좌가 특이하며 통일 신라후기의 작품으로 보여 진다.
마애석가 여래좌상에 경건한 마음으로 예경하며 금오산 정상으로 향함은
지극히 타당한 불자의 심리다.
금오봉 정상에는 비경의 둘레 길이 보인다. 줄곳 왼쪽으로 0.9km를 걸어 들어
가면 금오산의 북쪽 전망대가 나타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선택하여
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금오봉 정상에는 청량한 바람이 있다. 깨끗하며 맑은 청아한 공(空)함이
채워지는 심금(心琴)의 울림이 있다.
금오봉 정상은 올라 오는 사람들을 위한 비워 둔 자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올랐다가 비워주고 --- ! 이제는 또 우리의 차례로 올랐다 비워주는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며 따른다. 정상은 언제나 오르는 사람을 위해 비워져 있다.
아래에는 삼능 마애석가여래 조각상이 그윽히 동남쪽을 바라 본다. 1,000년
의 흘러간 역사 통일신라 시대의 말 달리든 시대를 회상한다. 1,000년의 역사
가 현대에 이어져 2011년의 시계침이 멈춤없이 달리고 있다.
돌아 오는 길은 남산 진입구 명품 소나무 길 밑을 거쳐 내려 온다. 남산 금오봉
정상을 정복하고 지친 몸으로 늘어진 내 모습과 명품의 모양으로 휘영청 달빛
처럼 늘어진 멋스런 소나무의 모습이 대조 된다.
mob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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