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

신심명(信心銘)

woody7553 2011. 1. 3. 12:02

 

 


    신심명(信心銘) - 三祖 僧璨大師(삼조 승찬대사)











    1.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2.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




    3.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만큼 벌어지나니
    毫釐有差하면 天地懸隔하나니


    4.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欲得現前이어든 莫存順逆하라


    5. 어긋남과 다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違順相爭이 是爲心病이니


    6.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
    不識玄旨하고 徒勞念靜이로다


    7.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圓同太虛하야 無欠無餘어늘


    8.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까닭에 여여하지 못하도다.
    良由取捨하야 所以不如라


    9. 세간의 인연도 따라가지 말고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말라.
    莫逐有緣하고 勿住空忍하라


    10. 한 가지를 바로 지니면 사라져 저절로 다하리라.
    一種平懷하면 泯然自塵이라



    11. 움직임을 그쳐 그침에 돌아가면 그침이 다시 큰 옴직임이 되나니
    止動歸止하면 止更彌動하나니


    12. 오직 양변에 머물러 있거니 어찌 한 가지임을 알 건가.
    唯滯兩邊이라 寧知一種가



    13. 한 가지에 통하지 못하면 양쪽 다 공덕을 잃으리니
    一種不通하면 兩處失功이니


    14.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함을 따르면 공함을 등지느니라.
    遣有沒有요 從空背空이라


    15. 말아 많고 생각이 많으면 더욱 더 상응치 못함이요
    多言多慮하면 轉不相應이요


    16.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 없느니라.
    絶言絶慮하면 無處不通이라



    17.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춤을 따르면 근본을 잃나니
    歸根得旨요 隨照失宗이니


    18. 잠깐 사이에 돌이켜 비춰보면 앞의 공함보다 뛰어남이라
    須臾返照하면 勝却前空이라


    19. 앞의 공함이 전변함은 모두 망견 때문이니
    前空이 轉變은 皆由妄見이니


    20. 참됨을 구하려 하지 말고 오직 망령된 견해만 쉴지니라.
    不用求眞이요 唯須息見이라.


    21. 두 견해에 머물지 말고 삼가 좇아가 찾지 말라.
    二見에 不住하야 愼莫追尋하라


    22.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러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
    在有是非하면 紛然失心이니라


    23.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 마저도 지키지 말라.
    二由一有니 一亦莫守하라


    24.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이 허물 없느니라.
    一心不生하면 萬法無咎니라


    25. 허물이 없으면 법도 없고 나지 않으며 마음이랄 것도 없음이라
    無咎無法이요 不生不心이라



    26. 주관은 객관을 따라 소멸하고 객관은 주관을 따라 잠겨서
    能隋境滅하고 境逐能沈하야


    27. 객관은 주관으로 말미암아 객관이요 주관은 객관으로 말미암아 주관이니
    境由能境이요 能由境能이니


    28. 양단을 알고자 할진댄 원래 하나의 공이니라.
    欲知兩段인댄 元是一空이라


    30. 세밀하고 거칠음을 보지 못하거니 어찌 치우침이 있겠는가.
    不見精 어니 寧有偏黨가


    31. 대도는 본체가 넓어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거늘
    大道體寬하야 無易無難이어늘


    32. 좁은 견해로 여우같은 의심을 내어 서둘수록 더욱 더디어지도다.
    小見이 狐疑하야 轉急轉遲로다


    33. 집착하면 법도를 잃음이라 반드시 삿된 길로 들어가고
    執之면 失度라 必入邪路요


    34. 놓아 버리면 자연히 본래로 되어 본체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도다.
    放之면 自然이니 體無去住라


    35. 자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여 소요하여 번뇌가 끊기고
    任性合道하야 逍遙絶惱하고


    36.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繫念하면 乖眞하야 昏沈이 不好니라


    37. 좋지 않으면 심기를 괴롭히거늘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 건가.
    不好勞神커든 何用疎親가


    38.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欲趣一乘이어든 勿惡六塵하라


    39.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라
    六塵을 不惡하면 還同正覺이라


    40.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智者는 無爲어늘 愚人은 自縛이로다



    41. 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法無異法이어늘 妄自愛着하야










    42.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將心用心하니 豈非大錯가


    43.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迷生寂亂이요 悟無好惡어니










    44. 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는 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로다.
    一切二邊은 良由斟酌이로다


    45. 꿈 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夢幻空華를 何勞把捉가


    46.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 버려라.
    得失是非를 一時放却하라


    47. 눈에 만약 졸음이 없으면 모든 꿈 저절로 없어지고
    眼若不睡면 諸夢自除요



    48.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만법이 한결같느니라.
    心若不異면 萬法一如니라


    49. 한결 같음은 본체가 현모하여 올연히 인연을 잊어서
    一如體玄하야 兀爾忘緣하야


    50. 만법이 다 현전함에 돌아감이 자연스럽도다.
    萬法이 齊觀에 歸復自然이니라


    51. 그 까닭을 없이 하여 견주어 비할 바가 없음이라
    泯其所以하야 不可方比라


    52. 그치면서 움직이니 움직임이 없고 움직이면서 그치니 그침이 없나니
    止動無動이요 動止無止니


    53. 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거니 하나인들 어찌 있을건가.
    兩旣不成이라 一何有爾아


    54. 마지막 다한 이 지혜는 그침이 없느니라
    究竟窮極하야 不存軌則이요


    55. 마음에 계합하여 평등케 되어 짓고 짓는 바가 함께 쉬도다.
    契心平等하야 昭作이 俱息이로다


    56. 여우같은 의심이 다하여 맑아지면 바른 믿음이 고루 발라지면
    狐疑가 淨盡하면 正信이 調直이라


    57. 일체가 머물지 아니하여 기억할 아무 것도 없도다.
    一切不留하야 無可記檍이로다


    58. 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애써 마음 쓸 일 아니로다.
    虛明自照하야 不勞心力이라


    59. 생각으로 헤아릴 곳 아님이라 의식과 망정으론 측량키 어렵도다.
    非思量處라 識情으론 難測이로다


    60. 바로 깨친 진여의 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眞如法界엔 無他無自라


    61. 재빨리 상응코저 하거든 둘 아님을 말할 뿐이로다.
    要急相應하면 唯言不二로다


    62. 둘 아님은 모두가 같아서 포용하지 않음이 없나니
    不二가 皆同하야 無不包容하니


    63. 시방의 지혜로운 이들은 모두 이 종취로 들어 옴이라
    十方智者가 皆入此宗이라


    64. 종취란 짧거나 긴 것이 아니니 한 생각이 만년이요
    宗非促延이니 一念萬年이요


    65.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시방이 바로 눈 앞이로다.
    無在不在하야 十方目前이로다


    66. 지극히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아서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極小同大하야 忘絶境界하고


    67. 지극히 큰 것은 작은 것과 같아서 그 끝과 겉을 볼 수 없음이라
    極大同小하야 不見邊表라


    68.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니
    有卽是無요 無卽是有니


    69. 만약 이 같지 않다면 반드시 지켜서는 안되느니라
    若不如此인댄 不必須守니라


    70.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
    一卽一切요 一切卽一이니


    71. 다만 능히 이렇게만 된다면 마치지 못할까 뭘 걱정하랴.
    但能如是하면 何慮不畢가



    72. 믿는 마음은 둘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信心不二요 不二信心이니


    73.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 미래 현재가 아니로다.
    言語道斷하야 非去來今이로다







    신심명(信心銘) 해제

    신심명(信心銘)은 삼조(三祖) 승찬대사(僧璨大師)가
    지은 글입니다.
    명(銘)이란 일반적으로 금석(金石), 그릇, 비석 따위에
    자계(自戒)의 뜻으로나, 남의 공적 또는 사물의 내력을
    찬양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여 새긴 한문 글귀를 말하는데,
    이 신심명은 삼조(三祖)스님께서 우리가 처음 발심할
    때로부터 마지막 구역성불할 때까지 가져야 하는
    신심에 대해서 남겨 놓으신 사언절구(四言絶句)의 시문(詩文)입니다
    .


    이 신심명은 글 자체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심이란 도(道)의 본원(本源)이며
    진여법계(眞如法界)에 사무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은 우리 수도인의 좌우명(左右銘)인 것입니다.

    승찬대사는 수(隋)나라의 양제(煬帝) 대업(大業) 2년
    10월 5일(서기 606년)에 입적하셨으며,
    그의 세수는 알 수 없습니다.


    승찬대사가 돌아가신 지 150여 년 뒤 당(唐)나라
    현종(玄宗) 황제가 감지선사(鑑智禪師)라 시호(諡號)를
    올리고 탑호(塔號)를 각적(覺寂)이라 하였으며
    그 당시 유명한 재상인 방관(房琯)이 탑비문을 지었습니다.

    승찬대사는 본래 대풍질(大風疾)이라는
    큰 병에 걸려 있었는데 오늘날의 문둥병입니다.
    스님은 문둥병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하다
    이조(二祖) 혜가 대사(慧可大師)를 찾아가
    자기의 성명도 밝히지 않고 불쑥 물었습니다.


    "제자는 문둥병을 앓고 있사옵니다.
    화상께서는 저의 죄를 참회케 하여주십시오."
    "그대는 죄를 가져 오노라. 죄를 참회시켜 주리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느니라.
    그대는 그저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에 의지하여 안주해라."

    "지금 화상(和尙)을 뵈옵고 승보(僧寶)는 알았으나
    어떤 것을 불보(佛寶), 법보(法寶)라 합니까?"

    "마음이 부처며 마음이 법이니라.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요,
    승보도 또한 그러하니 그대는 알겠는가?"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은 마음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으며 마음이 그러하듯
    불보와 법보도 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이에 혜가대사께서 그가 법기(法器)인 줄 아시고
    매우 기특하게 여겨 바로 머리를 깎아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의 보배이다.

    구슬 찬(璨)자를 서서 승찬(僧璨)이라 하라."

    그해 3월 18일 복광사(福光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그로부터 병이 차츰 나아져서 2년 동안
    혜가스님을 시봉하였습니다.

    승찬대사는 평생을 은거하여 지내다가 나중에
    어린 나이의 도신선사(道信禪師)를 만나 법을 깨우쳐 주고
    뒤에 구족계를 받게 한 후 법을 전하면서...

    "나에게서 법을 받았다고 절대로 말하지 말아라."고
    당부 하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실 때에는 법회하던 큰 나무 밑에서 합장한 채
    서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묘를 써서 스님을
    모셨는데, 뒤에 이상(李常)이라는 사람이
    신회선사(神會禪師)에게 물어서 산곡사(山谷寺)에
    승찬대사의 묘가 있음을 알고는 가서 화장하여
    사리(舍利) 삼백 알을 얻었다고 합니다.

    승찬스님은 본래 문둥병을 앓았기 때문에
    문둥병이 나은 후에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스님을 적두찬(赤頭璨)이란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이는 대머리의 붉은 살뿐이라는 뜻입니다.


    그 승찬대사가 남겨 놓은 저술이 바로 이 <신심명>입니다.
    요즈음 일본 학자들 가운데는 그 분이 숨어 다니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의 행적에 모순된 점이 많다고 하여
    실제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적인 여러 가지 점들을 상고해 보면
    삼조 승찬스님이 실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신심명>에 있어서 그 신(信), 곧 믿음이
    보통의 신(信), 믿음이 아니라 신, 해, 오, 증(信解悟證)
    전체를 통하는 신(信), 믿음입니다.


    글 전체는 4언절구(四言絶句)로 해서 146구 584자로
    되어 있는 간단한 글이지만, 팔만대장경의 심오한
    불법도리와 천칠백 공안의 격외도리(格外道理)전체가
    이 글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모두들 평(評)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의리적(義理的)으로 법문한 것 같지만 간단한
    이 글 전체 속에 격외도리가 다 갖추어져 있으며,
    교리의 현묘한 뜻도 빠짐없이 있습니다.


    중국에 불법이 전해진 이후로 '문자로서는 최고의 문자'라고
    학자들이 격찬할 뿐만 아니라 삼조 승찬대사의 <신심명>같은
    문자는 하나일 뿐, 둘은 없다고들 평합니다.


    그러므로 이 글이 불교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불교사상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신심명의 근본 골자가
    무엇인가 하면 글 전체가 모두 양별을 여읜 중도(中道)에
    입각해 있다는 것입니다. 글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대(對對)를 40대(四十對)로 갖추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대(對對)란 곧 미워함과 사랑함[憎愛].
    거슬림과 다름[逆順], 옳고 그름[是非] 등등 일상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생의 상대 개념 즉 변견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심명>은 간단한 법문이지만 대대(對對)를 떠난
    중도법을 간명하게 보여준 드문 저술입니다.

    <신심명>은 일관된 논리로서 선(禪)이나 교(敎)를 막론하고
    불교 전체를 통하여 양변을 여읜 중도(中道)가 불교의 근본
    사상임을 표현한 총괄적인 중도총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심명해제의 자료출처 : 산방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