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선 지하철 구포역의 웅장한 모습이 강렬하게 내려 쏟는 6월의 뜨거운 태양아래 벗은 채 힘주고 있는 듯하다. 그늘 하나 없는 모래사막의 오전 08시30분을 연상시킨다. 바로 이 구포역 앞에서 08시30분에 맞추는 김해 버스 여차리행 신곡마을 하차, 금동 산이 오늘의 목표 코스가 된다.
부산 일보 등산 코스에서 이미 때 묻지 않은 새로운 상품으로 신문에 소개된 등산 코스 이다. 여산과 3호선 구포 역 네 전망대에서 만나고, 이역 밖 김해 여차리 행 버스 종점에서 서총장을 해후하게 된다. 서총장 이미 10분전에 도착하여 우리를 눈 웃음속에 반긴다.
따거운 했볕처럼 어느듯 08시33분의 시간과 함께 김해 여차리 행 버스가 일행들의 앞에 도착한다. 여산이 기사에게 신곡마을을 부탁하고, 약 40여분의 주행 끝에 이곳 금동 산의 진입 구 신곡마을에 도착한다. 하늘은 뭉게구름이 약간 있으나 비 올듯한 하늘이 아니다. 푸른 하늘이 그대로 올려다 보인다.
일기 예보에 의하면 오늘 오후에 많은 비가 올 것이라는 통지가 있었다. 모두들 기다리는 비 소식에 마음이 풍성 해진다. 과거에 비해 극명하게 가뭄에 의한 물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물 팔아먹는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가 섬뜩하게 현대를 갈라놓고 있다. 놀라울 뿐이다.
신곡마을로 약 10분을 진입하여 들어오면 제법 많은 중소 제조업체들의 난립이 시야에 들어오고, 전 세계가 불황이라는 보도가 있는 가운데, 그러나 이곳은 일감이 있어 열심히 공장이 돌아가고 있음이 눈에 보인다. 이렇게 입지 조건이 별로 좋지 않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공장에서는 기계소리 한창이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일순 스쳐 지나간다.
바로 앞에 가로 막고 선 금동 산의 첫째 관문이 높다랗게 나타난다. 그리고 철탑의 위용이 일행을 주눅들게 한다. 6월의 뜨거움과 함께 초록의 신록이 무성하게 영글어 가고 있다.
" 높이는 463.5m 이지만, 산행시간 4-5시간의 만만 챦은 코스라고 쓰여 있던데 --- " 여산의 말이다.
길가에는 밭 일구는 아낙네들의 후끈한 흙냄새가 정다움을 불러다 주고, 바로 앞에 이어지는 작은 사찰 "감로사 "의 부처님 상이 일행을 정답게 맞이한다. 합장 인사 후 "감로사" 절 뒤를 돌아 금동 산의 들머리를 찾아 든다.
부산 일보의 노랑 깃발이 금동 산의 들머리를 반갑게 알려 주고 있다.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이표식이 길을 이끌어 주는 해양의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앞서 가는 여산은 이미 힘찬 발걸음으로 일행을 끌어당기고 있다. 어린 잡목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바로 치고 오르는 힘든 고개로 연결 된다. 김해의 산들은 높지는 않은데 참 --- 만만 챦은 산들이 많다 싶다.
그것은 낙동강 수면에서 시작하는, 평지에서 우뚝 솟은 산이기에, 200-300m 를 먹고 들어가는 다른 지역의 산에 비해 그 가파름이 극렬하다. 즉 금동 산 463.5m의 높이라면, 타산의 약 700m의 높이와 맞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 데해서는 여산도 인정을 한단다.
묘 자리를 지나 그사이로 위용 있는 철탑을 지나 산은 점점 깊어 감을 느낀다. 씨원하게 비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 하늘은 푸르기만 하고, 온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분출 되고 있다. 푸른 녹색의 신록은 온산을 물들이고 있다. 이 푸른 녹색의 피톤 치드를 페부 깊숙이 빨아, 분출되는 땀과 함께 체네의 페기물이 몸 밖으로 뿜어져 나감을 느낀다.
가파른 길을 약 40분 등정후 10분 간 휴식을 취한다. 예정되로 라면 1시간 계속 오를텐데 --- 오늘 서총장 ,철산, 여산을 따라가지 못하니 이쯤에서 두 사람을 위해 여산이 휴식을 취한다. 날씨도 덥고 숨이 턱까지 막힌다. 헐떡거림은 약 3분간 가뿐 숨이 계속 된다. 서총장 간밤에 02시에 집에 돌아 왔단다. 잠을 못 잤으니 오늘 좀 괴로울 것이다. 알고 보니 자신이 부산일보 기사를 보고, 여산에게 연락하여 이곳 김해 금동 산으로 정 했나 보다.
"부메랑"의 효과라고 했던가 ? 하필이면 서총장, 새벽 02시에 귀가한 이날이, 가파른 금동산 을 오르게 될줄은 꿈에도 예측 불가한 시절 인연을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거운 발걸음은 계속 되고 --- " 아이구 힘들다, 여산도 땀을 흘려야 하니까 놔두고 우린 좀 쉬었다 가자" 서총장 말이다.
멀리 원동 앞을 흐르는 낙동강의 본류가 천천히 달리고 푸른 산의 비단결 능선은 서쪽으로 달리고 있다. 흡사 사연 많은 만어 산의 전설로 숨어드는 듯하다. " 대 자유의 영원한 생명을 주십시요" 동해 용왕의 아들, 고기 왕자의 하소연이 억수 같이 퍼붓는 빗속에, 지금도 귓가에 여울진다.
약 300m의 고지에 나타난 암벽 바위가 길없는 길이 되어 앞을 막아선다. 무릅까지 빠지는 떡갈나무 낙엽이 암벽 바위를 뒤덮고 있고, 새로운 녹색의 어린잎이 새로운 새상을 맞이하고 있다. " 사(死)속에 생(生)이 있고, 생(生)속에 사(死)가 있다.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는 분별없음이, 바로 무극(無極)의 경계, 자연 이다. 생(生)과 사(死)는 자연의 작은 한 조각 일뿐 이다."
400m 정도의 고지에 나타난 거대한 암벽이 눈앞을 막아선다. 등반 객들이 오르지 않은 코스인지, 로-프도 없이 길도 없는 암벽 등반이 되고 있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올라선 암벽의 발걸음이, 암벽 높이의 고소 공포증인지 어지러우며, 몸이 흔들거린다.
무릅까지 빠지는 떡갈나무, 도토리나무 낙엽을 헤치며 서총장 암벽 길을 뚫고 있다. 녹색의 산새는 처연하며 무심 하다. 여산은 이미 암벽의 정상에 도달 한듯하다. 올라 갈 길을 찾지만 로-프나, 길이 없으니, 매우 위험한 길이 되고 있다.
암벽 바위 밑에는 무릅까지 빠지는 떡갈나무 낙엽이 쌓여 있다. 가파른 경사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낙엽을 잘못 밟으면 미끄러질 확률도 있다. 이 바위를 올라야 금동산의 첫째 관문을 뚫는것 이다. 다리가 후둘 후둘 떨리며 어지러움을 느낀다. 김해 산들의 급격히 쏟은 가파름의 특징 때문 일 것이다. "올라야 한다." 여산이 이 암벽 바위를 올랐나 보다. 위에서 소리가 들린다.
여산이 위에서, 오르는 서총장 ,철산을 사진 찍고 있다. 거대한 암벽에는 각종 이끼의 군상들이 지천에 기생 하고 있다. 이런 이끼가 바위 속으로 뿌리를 내려 오랜 세월에 걸쳐 큰 바위를 깬다는 그동안 몰랐던 학설도 새로 듣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끼가 자란 그 밑으로, 정말 바위에 금이 가있다.
금동산의 첫째 관문 거대한 암벽을 정복하고 그 위에서 서쪽으로 본 낙동강의 본류 원동 지점 이다. 산 능선을 넘어 호수처럼 조용히 부산 하단 쪽으로, 흐름이 눈 아래 펼쳐진다.
오른 쪽으로 펼쳐지는 신곡 마을의 풍경이 흐르는 낙동강의 거대한 본류와 함께 위대 하다.
첫 관문 큰 바위 위에서 일행들 10분간 휴식을 취한다. 이게 정상인지 ? 아닌지 ? 여산 지도를 보며 확인 하고 있다. 잘 알려 지지 않은 새로운 등산 코스이기에 안내 팻말도 없는 처녀지 이다.
이곳이 정상이 아님을 판단하고 뒷 쪽으로 깊숙히 물러앉은, 숲에 쌓인 높다란 제 2 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곳이 정상임을 파악하고 여산이 앞에서 길을 가른다. 바위 암벽을 힘들게 타고 넘으며, 우리 3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고즈녁한 산행길이 되고 있다.
또다시 헐떡거림이 턱에 차오르고 있다. 땀이 온몸으로 ,머리로 비 오듯 흘러내린다. 제 2봉의 정상을 향해 아무도 없는 3사람만의 산행이 올랐다 내렸다 하며, 인내 속에서 인간의 한계, 도전의 장이 되고 있다. 노랑 부산 일보 안내 깃발이 마지막 정상의 길로 안내하고 있다.
드디어 정상이다. 463.5m 의 금동산의 정상석이 멋진 예술성을 풍겨주고 있다. 정말 멋진 정상 석 이다. 뾰족한 불안정한 탑을 양 옆에서 끌어 앉아 안정성을 가미 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상에 올라 우선 피로감으로 Tm러질듯 한데도, 힘들여 탑을 만들어 세워준, 누군진 몰라도 산꾼,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금동산(463.5)m의 정상 석 옆, 산신(山神)의 기(氣)가 흠뻑 내리는 한 쪽 편에서 3사람만의 정상 휴식을 가져 본다. 낙엽을 좋아하는 여산, 그리고 서총장, 삽박한 낙엽위에 산꾼의 행복감 " 나르시즘 " 에 빠져 든다. 오늘 가파른 길을 땀에 젖어며 너무 힘들게 올랐던가 보다. 이상한 것이 등산 한번 빠지면, 그 뒤의 산행이 너무 힘듦을, 자각 할 수 있겠다. 인체의 체력은 쉼 없이 가꾸어야 함을 교훈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하산 길을 안내 하는 부산 일보 노랑 깃발이 금동산의 숲속에서 새롭다. 이 표식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활을 앉겨 주는지 경험한 사람만이 알 것이다. 노랑과 녹색의 메칭(matching)이 상호 공생을 의미하는 듯하다.
숲속 길을 통하여 약 30분 하산 길에 나타나는 난데없는 악어 바위 ! 흡사 움츠린 악어 한 마리다. 눈이며 입이며, 물을 찾아 나서는 거대한 악어 한마리가 틀림없다. 그 기묘함에 일행들 흠칫 놀란다. 자연의 설치 예술이 이렇게 섬세하다. 하산 길의 악어바위에서 두 사람, 서총장 ,여산 기념사진 하나 만든다. 지금 이곳은 약 400m 고지라고 생각 된다. 눈 아래 마을들이 파노라마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멀리 남양 산으로 달리는 고속도로가 배꼽 아래 휘어져 굽이친다. 북으로 가는 능선인가 하면 서쪽으로, 남으로 ,동으로 뻗어 나가는 비단 결 같은 능선이 한결같이, 바로 아래 마을로 급하게 달려 내려간다.
원동 부근의 낙동 강변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낙동강 본류의 물줄기가 호수처럼 조용하게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린다. 그 끝은 하단 을숙도를 지나 다대포의 바다 쪽으로 흘러내리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올랐던 금동산의 정상 능선이 구름처럼 아련하다. 하산 길에 올랐다 내려야 하는 제 3봉의 정상, 이곳에서 직선거리 1.5km는 될성싶다. 먼 거리다. 일행들의 하산 길에 부산 구포에서 왔다는 등산객 1 명을 발견 한다. 금동산의 오늘 등반 객은 우리 일행 3명과 이사람 1명, 4명이 전부 이다.
아직도 풋풋한 야생의 만개 열매. 10월 달이 되면 빨갛게 익어가는 내 주위의 친근미 이다.
익어가는 골던 키위(Golden-Kiwi) 한낮의 풍성한 따가움에 노오랗게 익어 갈것 이다.
09시 23분부터 3시간 30분에 걸친 금동산 등반은 맛집 할매 추어탕 집에서 마무리 된다. " 늘 처음처럼" 쓰여진 키큰 장성이 양옆으로 일행의 시선을 잡아 놓는다. 자세히 보니 이집 자체가 예술 작품으로 깍은, 볼만한 조각 작품이 꽉 찼다. 화가 모자를 쓴 주인인 듯한 사람이 마당을 왔다 갔다 하는데 말을 못하는 장애인 인듯하다.
식당인 할매 추어탕 집에는 보기만 해도 짜릿한 남근이 정원을 풍만하게 채워 주고 있다. 희귀식물도 많고, 희귀 동물인 살아 있는 닭 종류도 전시 되고 있어 볼거리를 갖추고 있는 식당 이다.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할매 추어탕 집의 메뉴 이다. 빠질수 없는 동동주, 그리고 이집의 유명한 추어탕 이다.
2008년 10월 달에 고노무현 대통령이 이집을 다녀 간 모양 이다. 맛으로 이름을 내면 거리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음을 할매 추어탕 집을 보면 알수 있을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집, 메리 마을 추어탕 집에서 붐빈다.
지금은 추억의 존제가 되고만, 고 노무현 대통령의 근영이 이집에서 가슴속을 헹- 뚫어 놓는다. 2008년 10/29일이니, 그의 죽음이 있던 2009년 05월 23일의 비극적인 미래를 예견이나 했을까 ?
하늘을 향해 누워 본다. 1분 앞도 못 보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 이다. --- ! 할 말도 없고, 모를 뿐이다. 안다는 것은 오로지 모를 뿐이다. 일기 예보가 맞으려나 보다.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 앗 !빗방울 떨어진다." 서총장의 말이다. 간밤에 못잔 잠을, 부산행 버스 오는 시간까지(16:50분) 30분의 보충 잠을, 서총장 에게만 유독 골라서 떨어지는 하늘의 조화에 벌떡 일어 난다.
구포역 옆의 훤한 대낮 선술집에서 맥주 5병을 놓고 간단한 이야기의 뒤풀이가
풀어진다. " 로-싸가 오고 있다."
감사 합니다.
철산 배상
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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