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의 짧은 여정을 담고 일행들 3/21-22일의 보길도 ---> 진도를 돌아 나오는 바쁜 일정이 새벽 5시 부산 출발로 계획을 못 박는다.
여명이 트는 희뿌옇한 어둠을 가르며 09시 30분 전라남도 해남의 아늑한 매화마을 --- ! 온 천지가 새하얀 매화 꽃으로 뒤덮인 환상의
동화 같은 마을에 도착한다. 눈앞에 불시에 펼쳐진 강렬한 태양아래 눈부신 하얀 매화 꽃이 보는 이의 혼을 뺐아 놓는 경지이다.
남쪽 나라 해남의 매화 마을에는 봄의 전령 매화꽃, 진달래꽃이
만개하고 있다. 들과 야산에는 아침부터 붐비는 인파 속에 아름다운 색체의 향연이 이른 봄을 장식하고 있다.
무겁고 칙칙한 겨울의 긴 잠에서 훌훌 벗고 가벼운 마음의 화려한 색채를 풋풋한 물기로 뿜어내고 있다.
하얀 눈을 뿌려 놓은듯 마을 전체가 매화꽃으로 뒤덮여 봄 마다 찾아오는 그 화려함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자태는 매화 마을의 향기로운 꽃속에서 묻어 나오며 ---- ! 희망의 이봄을 찬양할 지어다.
해남 매화 마을을 벗어나서 완도가는 길의 땅끝마을 뱃머리를 찾아 나선다. 이정표가 도로변 곳곳에 잘 안내되어 있어 좀 멀기는 했지만 완도 산양 선착장을 쉽게 찾는다.
일행들이 도착하자 10시30분발 땅끝마을 향 배를 타게 된다. 평일은 1일 4회 정도 운행하며 여름 휴가철은 1일 14회정도로 출항 햇수가 많단다.
오늘 오후에는 비가 올것이라는 예보가 있고, 지금 흐린 날씨에 약간의 빗방울이 훝뿌리며 바람도 제법 세게 분다. 파도의 너울이 점점 높아 가는듯하다.
배에 탄 사람들은 거의 모두, 어린이 어른을 막론하고 현재의 상황을 즐거워 하고 있다.
짓푸른 물살을 가르며 너울 너울 올랐다 내렸다하며 파도를 헤치는 큰 배의 요동에 대리 만족의 엔돌핀이 치솟기 때문 일것이다.
그런고로 여행은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작은 행복인것 이다.
땅끝 마을로 떠나는 뱃길은 점점 멀어만 가고 ---
희뿌연 하늘에선 작은 빗방울이 떨친다.
언제나 그러하듯, 뱃길은 정해져 있고 짓푸른 파도는 무심하기만 하다.
지금 보이는 섬이 땅끝 마을 보길도 이다.
고산 윤선도 선생(1587년선조 20년-1671년)이 유배중 이곳에 머물렀다는 세연정. 워낙 성격이 강직하여, 길이 아니다 작정하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 조선시대의 호남 출신 시,문학의 대가로 어부사시,오우가,등 당대 최고의 작품을 남긴다.
그가 남긴 시조 75수는 국문학사상 시조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시문집으로는 정조 15년에 왕의 특명으로 발간된 〈고산유고〉가 있다.
이 시문집의 하별집(下別集)에 시조 및 단가 75수가 〈산중신곡 山中新曲〉 18수, 〈산중속신곡 山中續新曲〉 2수, 기타 6수,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40수, 〈몽천요 夢天謠〉 5수, 〈우후요 雨後謠〉 1수 순서로 실려 전한다.
〈산중신곡〉 18수 가운데 〈오우가 五友歌〉는 물·돌·소나무·대나무·달을 읊은 시조로 널리 애송되었다. 〈어부사시사〉는 효종 때 부용동에 들어가 은거할 무렵에 지은 것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각각 10수씩 읊었다.
세연정의 아름다운 경치는 고산 윤선도 선생을 기억하게 한다.
그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복(家僕) 수백 명을 배에 태워 강화로 떠났으나, 이미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남한산성을 향해 가다가 이번에는 환도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세상을 등질 결심을 하고 뱃머리를 돌려 제주도로 향해 가던 중 보길도의 경치를 보고 반해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여생을 마칠 곳으로 이곳을 정해 놓는다.
1638년 인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죄로 영덕(盈德)으로 유배를 당해 다음해 풀려났다. 보길도로 돌아와 정자를 짓고 시(詩)·가(歌)·무(舞)를 즐기며 살았으며, 효종이 즉위한 이래 여러 차례 부름이 있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는다.
그는 이곳에서 무민거(無憫居)·정성당(靜成堂) 등 집을 짓고, 정자를 증축하며, 큰 못을 파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제자들을 가르친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산릉(山陵)문제와 조대비복제(趙大妃服制)문제가 대두되었다. 남인파인 윤선도는 송시열·송준길 등 노론파에 맞서 상소로써 항쟁했으나 과격하다고 하여 겨우 목숨을 건져 삼수(三水)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1667년(현종 9) 그의 나이 81세에 이르러 겨우 석방된 뒤 여생을 한적히 보내다가 1671년(현종 12) 낙서재(樂書齋)에서 세상을 마쳤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시비를 가림에 타협이 없어 자주 유배를 당했다. 한편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풍류인이기도 했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체취가 지금도 묻어나는 세연정의 조용한 정취가 옷깃에 파고드는 씨린삭풍을 이겨 내고 있다.
과거나 현제나 정치는 결코 믿을것이 못되는가 보다.
보길도의 예송리 해수욕장의 모습이다. 까만 조약돌이 모래 대신 동서로 펼쳐진 1km의 넓은 해변을
꽉 메우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 뜨있는 작은 배는 두둥실 한가롭기만 하다.
예송리 해변가에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범솔 나무 --- 소나무 일종의 나무이며 보길도와 같은 섬의 온화한 바닷가 해풍을 맞으며 잘 자라는 나무이다. 그둥치가 너무 크 3사람이 둥치를 안아야 할정도이며 높이도 20m 정도 뻗어 오는 나무도 많다.
보길도에서는 이렇게 큰 나무를 당산 나무라고 정하여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보길도 예송리 해수욕장에 산재한 까만 조약돌 ---!
들이치는 밀물의 파도에 씻겨 빛이나는 깨끗함으로
보존 되고 있다.
씻고 씻겨 깨끗한 정련함이 자연 우주 법계의 법도 이다.
보길도 전망대로 오르는 케이블 카에서 본 운무에 가려진 케이블카 - 레일이 끝없이 운무 속, 아래로 달리고 있다.
간밤, 예송리 해수욕장에서의 민박 21:00경, 뇌성을 동반한 소나기가 2시간 가량 쏟아 붓고 --- 지금은 비는 그쳤지만 아직 강한 저기압의 영향으로 날씨는 흐림으로 나타난다.
보길도의 전망대는 기후 관계로 운무에 젖어 출입을 제한한다.
입장료 지불하고 올라 가봐야 주위를 볼수 없으니 매표 창구의
여직원은 아예 출입을 저지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국내여행으로 다도해를 둘러보는 볼만한 곳으로 알려 져있으며, 특히 전복죽이 싸고 유명하단다. 심지어 어떤이는 전북죽 먹으로 이곳 까지 오는 사람도 있단다.
나의 경우는 우연챦게 벌써 2번째 방문이 되고 있다.
보길도를 벗어나, 완도를 거쳐 진도로 향하는 일행들은 점심식사를 전복죽과 라면으로 대치한다.
베낭 여행의 진수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텐터 치고 라면 끓이며 ---!
동심의 다리를 걷는 일행들의 모습에는 환한 미소가
넓게 번져 나간다.
따뜻한 기온이 감지되는 진도 대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생애 처음, 푸근함이 묻어는 진도땅을 밟아 본다.
진도견이 유명하다는 진도 ----! 이다리를 경계로 순종 진도견
만 존제한다는 진도 이다. 그들 말로 진도 대교 밖에는 잡종견이 허다하지만 이안에는 순종 진도견만 분양한다는 곳이다.
순조 때의 화가 소치 허련 1대 선생(1808-1893)의 기념관이 그림처럼 펼쳐 진다. 이곳을 운림 산방(雲林山房)이라고 한다.
전남 진도에 자리잡은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하여 5대째 내리 화가를 배출한 집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도에 사는 양천 허씨(陽川 許氏) 집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마 5대째 계속해서 예술가를 배출하는 집안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1대는 소치 허련(小痴 許鍊:1808∼1893), 2대는 미산 허형(米山 許瀅:1861∼1938), 3대는 남농 허건(南農 許楗:1908∼1987)과 그 동생인 임인 허림(林人 許林:1917∼1942), 4대는 임인의 아들인 임전 허문(林田 許文:1941∼현재), 5대는 남농의 손자인 허진(許塡:1962∼현재)으로 이어지고 있다.
허진 이외에도 같은 5대 항렬로는 허재, 허청규, 허은이 화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무등산 춘설헌(春雪軒)의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1891∼1977)도 진도에서 태어난 양천 허씨로 같은 집안이다.
진도는 이렇게 글 그림을 그리는 문인들의 유배지로도 유명하다. 진도는 문인(文人), 완도는 무인(武人)들의 유배지로 알려져 있다.
현대화에 밀려 개화가 좀 늦었지만 실제로 유능하며, 훌륭한 인제가 과거부터 유배 내지는 그늘에 가려 뛰어난 솜씨를 제대로 활용치
못하고 버려진 일례가 너무 많은듯하다. 진도 아리랑,시(詩)글, 창,가무,그림,작품들이 진도에서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알수있다.
운림산방, 이 연못에서 "스캔들"의 영화가 찍혔다하여 또 유명하다.
명필 추사 선생이 소치라는 호를 지어준 1대 소치 허련 선생의 영정을 모셔둔 운림사 제실 사당이다. 화가의 사당이라 그런지 운림사의 단청 색상도 찬연하며 화려함을 느낀다.
진도의 유명화가 소치(小痴 ) 허련(許鍊) 선생1808-1893 1대의
영정.
화가 소치 허련 선생의 작품중의 일품 매화 묵화.
이곳은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 난다는 진도 해변이다. 보이는 이곳에서 왼쪽편 섬쪽으로 멀리 둥글게 바닷길이
펼쳐지는 곳이다. 조수 간만의 차이로 대한민국 유일 무이한 바닷길이 열리는 곳이다.
그림처럼 길게 바닷길이 열리는 진도의 명물이
사진으로 홍보 되고 있다. 거의 매달 한 두번씩
진행 되나 2월-4월 사이에 조수 간만의 차이로
가장 물이 많이 빠진다는 현지인의 이야기가
있었다.
경이로운 진도를 벗어나,보성 차 밭으로 일행은 이동한다.
계단식 차 밭의 정렬된 아름다움이 마음속에 정갈함을 일 깨워준다. 척박한 땅의, 오지 인간들의 질긴 삶을 연상 시킨다.
얼마나 많은 손길이 이 차밭에 드리워 졌을까 ?
보성 녹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특산물이다.
세작 ,우전 ,곡우,--- 등등. 보성 녹차의 향기와 입에 감도는 쌉살한 맛은 명품중의 명품임을 강조한다.
일행들 시음(試飮)중의 향긋한 차향에 모두들 넋을 잃는다.
소치(小痴) 허련(許鍊 ) 선생의 또다른 작품.
감사합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풍성한 지식을 안고 온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철산 배상
2009/03/28
T.Badarzewska - The Malden's Prayer
(바다르체브스카 - 소녀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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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여류 피아니스트이자 바다르체프스카,그녀는 183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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