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55분의 미명속의 구포역은 12월 14일의 차거운 겨울의 기온속에 얼어 붙고 있다. 7시 20분의 지하철 수영역에서 여산과 해후 급하게 3호선으로 이곳 구포역으로 줄달음쳐 온다. 서총장 홀로 이곳에서 기다릴것이다.오늘은 만만하게 우리끼리 집사람들을 떼고 가뿐한 기분으로 청도 갓등산으로 향하는 무궁화 열차 여행이 된다. 역마다 서는 여행의 낭만은 함박눈 처럼 내려 쌓일것이다.
08시05분 출발의 구포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도열해 섰다. 제각각 가는길이 다르다 . 목적지가 다르듯이 생긴 사람들의 모습역시 제각각 다르다. 서울가는 사람 대전가는 사람 대구 가는사람----등등 , 밝아 오는 구포역의 플랫폼에는 행복한 낭만이 여행의 짧은 시간속으로 무한 질주한다. 현제 시간 08시01분 4분의 남은 시간이, 뭔가 모르게 이처럼 희망 스러울수가 없을것이다.
우리 열차 ---! 여객전무의 다정한 안내 방송이 귓전을 멤들고 달리는 열차안의 원동 어느지점의 차창 밖에 비친 거대한 낙동강의 도도한 물결이다. 언제나 민족과 함께하는 역사를 지닌 혼이 담긴, 절대로 유량이 줄지 않는 부산, 경남의 강이다. 하늘은 맑고 청명한데 몇점의 힌구름이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듯 산정을 멤돈다.
약 50분만에 청도 역에 도착하여 플렛폼을 빠져나오는데 --- 한편의 빈공간에 고풍스러운 옛 물건이 소담스럽게 가는이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천하대장군, 가마솥,항아리,약탕기---초갓집 등, 낯익은 풍경이 지나간 날의 그리움을 한사코 불러 일으킨다. 잊고 지나치는 현대문명의 편리함속에서 과거의 공간으로 바로 데려다 놓는 체험의 공간, 나를 되돌려 보게하는 겸손과 겸허의 귀퉁이로 나를 하심하게 한다. 무(無)가 유(有)를 창조하듯이 유(有)는 무(無)앞에 겸허해야 한다. 유(有)는 무(無)없이 존재할수 없다. 유 무의 상대법은 생멸법이기에 영원할수가 없다.
언젠가는 쓰러지는게 상대법이다. 영원한 자유는 어디인가 ? 불이(不二)의 공(空)한 영원법,우주 법계에 귀의 해야한다. 오고 감에 걸림이 없는 대해탈(大解脫)의 중도(中道)를 찾아야 한다.
청도역에서 09시 20분발 동곡, 금곡 방면,의 시외버스를 탑승한다. 금곡 매전교 까지 1인당/3,500원이다. 버스안에는 시골 할머니들이 아침부터 어디를 가는지--- 우리일행 3인외에 거의 자리를 메우고 있다. 할머니들은 1,500원에 타는듯 한데 우리는 약간의 착오로 3,500원으로 정해진듯 하다. 기사에게 부탁하여 학산가는 매전교 앞에 세워주기를 부탁한다.
매전교 앞에는 만국기처럼 지방기가 줄지어 펄럭이고 있고 다리 밑으로는 겨울바람에 일렁이는 맑은 물결이 흐르고 있다. 눈을 들어 산넘으로 떡 버티고 선 한폭의 설치 미술이 일행의 시선을 제압한다. 고목에 걸린 기타, 쟈니 기타다. 교수목의 밧줄이 간담을 서늘케하는 서부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듯한 공중에 걸린 쟈니-기타. 겨울날의 얼시년스런 풍경이다.
그뒤로 오른쪽 청도 삼족대를 지나 5개 중봉을 거쳐 올라야하는 왼쪽편으로 우뚝 쏟은 오늘의 목표 학산의 정상이 보인다.
청도 삼족대이다. 이 정자는 조선 중종14년(1519년)에 기묘사화가 일어나면서 삼족당 김대유(1479∼1552년)선생이 관직을 버리고 내려와 지내면서 후진을 교육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그는 정암 조광조의 문인으로 1507년(중종2년) 정시에 장원급제하여 진사가 되고, 호조정랑 겸 춘추관 기사관, 정언, 칠원현감을 지내고 1519년 기묘사화때 직을 사임하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조식, 박하담, 주세붕, 김응조, 김극일, 신계승 등 제현들과 도의지교를 맺고 이곳에서 강론하였는데, 그의 호를 따서 삼족대라 하였다.
삼족대는 학일산의 지맥이 동창천으로 숙으려드는 기슭 절벽위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북쪽평지에서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방형일곽의 토석담장은 동쪽으로 싸고돌며 북동쪽으로 사주문이 나있다. 건물은 정면3칸 중 좌측 협칸은 전면이 개방된 2간통 마루이고 우측 2칸은 전면에 반칸 퇴를 물려 마루를 깔고 그 뒤쪽에 온돌방을 들여 만들었다.
중종시대의 유생 조광조 김대유 선생 그리고 그의 후학들 이시대의 젊은 풍운아 서총장 과 여산.철산." 500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어즈버 태평 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선생의 500년 도읍지 시한수가 흐르는 물결되어 삼족대 아래로 흩어진다.
삼족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비경의 경치는 이곳을 이용하는 유생들의 가슴속에 시(詩)한수 읊즈릴 심금을 잡아 놓을듯하고---과거의 경치가 얼마나 수려했는지를 실감케하는 산(山)과 내(川)가 흐르는 풍경. 저절로 시상(詩想)이 뜨오를만하며 ----!!
삼족대 옆으로 국제신보의 들머리 깃발이 일행을 안내하고 -- 맑던 하늘은 산그림자의 영향인가 ? 흐린듯 침침한 산행길이 오늘은 왠지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 철산은 현제 2주일째 감기로 제 콘디션이 아니다. 어쩌면 이넓은 학산에 우리 일행 3사람외에는 어느곳에도 인기척은 없다. 가끔 동네 이장의 방송소리가 개짙는 소리와 함께 변동없는 금곡리 마을의 하루를 넓게 맞이하고 있다.
얼마나 빠르게 달리던지 ---! 사진 몇장 찍고 보니 앞서가던 여산과 서총장의 모습이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뛰다 싶이 하여 앞서가는 서총장을 발견한다. 숲속에 가려 보였다 안보였다하며 불러도 대답없고 흡사 " 철산 너 물좀 먹어라" 하는듯 하다. 사진이고 뭐고 다때리치고 앞서가는 서총장을 따라 잡을려고 온갖 힘을 다쓰보지만 -- 오늘은 이상하다, 서총장을 못잡겠다. 그정도로 한마리 노루 처럼 산길을 달렸다가 맞는 표현이겠다.
" 세상에 --이럴수가 ?" 다리 아프다던 서총장 ! 거짓 말이였던가 보다. 약 50분 등정후 400m고지에 잘가꾸어진 넓다란 묘지가 있고 그옆에서 일행은 10분간 휴식한다. 얼마나 헐떡거리며 달려 왔던지 철산은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외투를 벗으니 연기처럼 김이 올라온다. 배를 깍는 여산 옆의 서총장의 표정을 보라. 얼마나 겁나게 올라 왔으면 아직도 헐떡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달콤한 10분간의 휴식은 끝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 인생길 등반길 - 등반길 인생 역전의 길 " 로 매진한다. 침침한 산그늘의 솔밭은 지금 한창 아침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국제 신보의 노란 안내 리본이 한층 신뢰감을 불어 넣는다. " 이길로 오세요" 개발 루트 라서 그런지 타 산악회의 리본은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다.
두텁게 쌓인 갈참나무 낙엽이 온산을 뒤덮고 있다. 우주 자연의 신비는 하챦은 동물들에게도 골고루 먹이를 제공하고 있다. 공중에 나는새, 이산의 다람쥐 모두에게 가꾸지 않고 돌보지 않아도 풍성한 먹이를 골고루 제공함을 본다. 뺏고 갈취 하지 않아도 우주 자연은 제대로 된 중도(中道法性)을 가르치고 있다. 이속에서 두려움없는 가고 옴이 자연스럽게 존립하는 것이다.
높고 낮은 중봉을 5개 봉을 타고 넘어 현제 약 400고지의 능선에 낙엽에 묻힌 청색 바위가 즐비하게 나타난다. 가파른 능산길에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듯한 바위 군락이 급경사면에 난립되어 있다. 하늘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어느 작은 중봉의 정상이 바로위에 있구나 하는 감을 들게한다.
숨가빠하는 철산 --! 오늘 본의 아니게 여산 ,서총장이 너무 내달리는 바람에 무리하여 초기근력을 다 소모한듯한 헐떡거림이 숨가뿌게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페부 깊숙히 청량한 산소를 충전하며 온몸을 구석구석 Boild 시킴은 분명 값진 것이다. 오늘은 사진도 찍을 새 없이 급하게 달려 온듯하다.
서총장이 위에서 신호한다. 좀 쉬어가쟎다. 지금 여기까지 급경사를 쉬지 않고 올라 왔으니 상당한 힘이 들었을것이다. 우리가 넘어온 산길이 아련하게 보인다. 저기 아래에서 부터 오르고 내리며 2번 쉬고 여기까지 온것이다. " 학산까지 갈려면 오늘은 이렇게 좀 급하게 올라야 시간을 맞출수 있다고 여산이 말 한다" 그래서 그런지 출발후 뒤도 안돌아보고 내달리는 한마리 고라니 처럼 앞서 갔다. 얏-호 ! 소리만 남기며 ---!
오늘 말도 못할 정도의 홧-팅을 내 보인 서총장 ! 다리 아프다던 사람이 어데서 그런 파워가 나오는지 ----!!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의문의 사나이다. " 왜 그리 빨리 가냐 ?" " 앞에가는 여산하고 거리를 좁혀야 되쟎아--!!"
드디어 갓등산의 정상이다. 이 갓등산까지 오늘 6개의 크고 작은 중봉을 넘어 온것이다. 주행거리는 평소의 등반길과 별로 다름이 없으나, 여산의 말대로 학등산을 염두에둔 시간 산행을 답습하려니 초반부터 좀 설친 기분이 있어 초발 근기를 많이 소모한탓에 여기 까지 많이 지쳤다.
갓등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오늘의 최종 목적지 학등산이 멀리 가물가물 보이고 있다. 저기 까지 갈려고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꿈속의 미로가 아닐수 없다.겨울 산의 차거운 바람이 양볼을 얼리며 훑고 지나간다. 스산한 낙엽이 발 아래 날리고 가까운곳에서 소리 까마귀 우짖는 소리 귓전에 멤돌다 사라진다
상황은 다시 역전되고 언제 정상에 올랐는가 ? 하듯이 일행은 다시 급하게 내려 깍인 갓등산의 비탈길을 잰 걸음으로 하산한다.
무릅까지 빠지는 낙엽의 감촉을 느끼며 " 이시간 이후는 생각말자 오로지 낙엽과 하산에만 신경쓰자 " 아무도 걷지 않은 태고의 첫길을 국제 신보 안내깃발과 함께 3인의 산꾼이 이넓은 갓등산을 전세 내며 넘어서 내려 간다. 사각 거리는 낙엽의 소리는 부드러운 여인의 속삭임 같다. " 또 올거지요 ?" " 아프게 밟지 마세요" " 나를 기억 해주세요 " 등등 이다.
가파른 긴 하산길에 그림처럼 나타나는 마을의 풍경이 있다. 청도역으로 쭉 뻗어나가는 국도가 힘차게 남쪽으로 달리고 옹기 종기 풍요로운 마을의 뒷편에는 우람하게 높은 뚱뚱하고 거대한 이름 모를 높은 산그림자가 바로 쏟는 위압감을 자아내게 한다. 뭔가 멋진 산이다 싶은 만만 챦은 높이의 산이 앞을 버티고 막는다. 안기고 싶은 욕망이 돌긴 해도 현제로선 도무지 무리임을 깨닫는다. 언젠가 한번 여산과 함께 처음부터 시작하여 오르고 싶은 산이다.
하산길 긴 한편에 황금빛 낙엽과 잡목이 어우러진 미개발 지역, 길이 없는 하산길의 한 모퉁이에서 오늘의 갓등산 이야기를 정리 해본다. 천혜의 아름다운 지역이 이렇게 많은것을 사람들은 제나름의 잣대로 아름다움을 과소 평가 한다. 그들은 화려하고 인위적인것만 정해진 잣대로 아름답다 한다.
갓등산을 타고 넘어 청도 역으로 쭉뻗어가는 국도를 횡단한다. 학등산을 가기 위한 다음 진입구이다. 일행은 바로 위의 샛길로 접어들어 이곳에서 점심을 하게 된다. 시간은 12시 30분이다. " 점심후 하나더 학등산을 탈것인지 ? 안할건지 ?" 여산이 묻는다. 위로 올려다 보이는 학등산은 아득하기만 하다. " 서총장이 재빨리 " 오늘 그만 하지 ---" 여산이 내 얼굴을 쳐다 본다. 철산역시 무언의 긍정을 날리고 --- ! " 너무 많이 타면 다음에 또 안올라 할꺼고 오늘 여기서 갓등산 하나로 상황 끝 냅시다." 휴 --!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갓등산에서 하산한후 이 국도를 따라 1km 정도 도보로 내려오면 우리 일행이 청도 역에서 시외 버스를 타고 내렸던 금곡리 매전교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바로 보면 일행이 올랐던 삼족대 옆으로 들머리를 인식하며 멀리 왼쪽으로 우뚝 쏟은 갓등산을 확인할수 있다.
바로 이곳이다. 매전교에서 바라다 본 전경이다. 오른쪽 중턱에 삼족대의 유생관이 있고 왼쪽편으로 우뚝 쏟은 갓등산의 모습을 볼수 있다. 청도의 국도를 따라가며 개발된 등산루트 이다. 내가 등산한 산을 국도를 타면서 보고 즐길수 있는 이점이 있는 산이다. 평길로 가면 이렇게 쉬운길을 등산으로 힘들게 크고 작은 중봉을 타고 넘었구나, 하는 보람을 가지고 생각해 보게 하는 재미 있는 등산 루-트이다.
삼족대의 유생관 밑을 흐르는 비경의 경치는 지금도 살아 숨쉬고 --- 은빛 물결위에는 수천개의 밝은 해가 뜨있다. 어느듯 중천의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고 --- 삼족대 유생관은 은빛 물결속에 나홀로 무심하다.
부산행 청도 플랫폼의 양변에는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이 오는이 가는이를 맞이하고 보내며 ---멈춰버린 시간을 아쉬워한다.
일행은 매전교에서 청도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16시 30분발 부산행 열차를 예약한다. 1시간 30분정도의 시간이 남아 청도역 옆의 원조 추어탕 집에서 시간까지 막걸리와 추어탕으로 일잔을 기울인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사람들 ----! 이들은 분명 복 받을 위인들이다.
귀대하는 부산행 무궁화 열차에는 올때 처럼 여행의 낭만이 최고조에 달한 행복감으로 창밖에 여울진다. 서총장이 로-싸에게 전화를 날리고 있다.
일행들 오늘 수고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2008/12/16
徹山拜上.
루도비코스 톤 아노이온(Loudovikos ton Anoyion)
그는 크레타섬에서 만돌린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이다.
크레타섬의 중앙에는 2500미터에 달하는 신화의 땅이
현실화된 듯한 프질로티스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리스 문명보다 앞선 미노스 문명이 발굴되었던 크노소스...
그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사랑,운명을 노래한다.
어머니,
깊은 협곡이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여
비탄에 젖어 흐느끼고 있군요
성장한 당신의 아들 말을 들어보세요
자랑스럽고 수줍은 나의 어머니
당신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를 저는 믿을 수 없군요
간청하노니, 달아, 잊지 말아다오
어둠 속에 내 어머니를 내버려주지 말아다오
눈 덮인 프질로리티스산 봉우리에 빛을 비춰다오
그리고 흔들거리지 말아다오
내 어머니가 너를 기다릴 터이니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 이해인
어머니
넓은 들판을 갉아먹고 사는 들쥐처럼
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어머니 당신의 허리를 갉아먹으며
그래도 당신은 웃기만 하십니다
자식 얼굴에 웃음짓는 걸로
허리를 대신하겠다고 하시며
당신은 그저 웃기만 하십니다
자식들 때문에 죄인으로
목을 매며 사시면서도
자식들 입에 밥술이라도 넣어줄 수 있어
행복했다며
당신은 그저 웃기만 하십니다
철이 들어가는 자식들을 보며
설움도 웃어 넘길 수 있었다는
당신은 가녀린 허리를 더
자식들에게 떼어주지 못하는게
늘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어머니
이제는 그 가녀린 허리를 대신해
제가 당신의 허리가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 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히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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