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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26일 Facebook 이야기

woody7553 2014. 1. 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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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수보살의 <중론>-성철선사] [2]

     『중론(中論)』

     

     

    용수(龍樹 : Nagarjuna)보살은 인도대승불교의 한 학파인 중관파(中觀派)를 일으킨 시조입니다. 생존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서기 150~250년으로 추정합니다. 용수보살은 <중론>을 비롯하여 <십이문론> <회쟁론> 등과 대품반야경의 주석서인 <대지도론> 그리고 기타 여러 저술을 남겼는데, 그 저술 대부분의 중점은 바로 공사상(空思想)의 천명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외도와 소승불교를 타파하고 대승불교를 크게 중흥시켰으므로 불교계에서는 용수보살을 부처님 이래로 제일이며 대승불교의 선구자요 최대의 공로자로 추앙합니다.

     

    용수논사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론(中論)>에서 중도설(中道說)대하여 명확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초품에 등장하는 '팔불게(八不偈)'가 있습니다. 이것은 생멸(生滅) · 단상(斷常) · 일이(一異) · 내거(來去) 등의 여덟 구가 부정적으로 표시된 것으로 이 팔불(八不)에 의해 도출된 사상이 곧 '팔불중도(八不中道)'입니다. 이 팔불게(八不偈)는 제 24품에 나오는 삼제게(三諦偈)와 더불어 중관론의 중도사상을 표방하는 대표적 교리로서 예로부터 유명합니다.

     

    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항상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으며,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去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能說是因緣   善滅諸戱論     능히 이 인연을 설해서 모든 희론을 멸하니,

    我稽首禮佛   諸說中第一     모든 설법자 중에서 제일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하나이다.-<중론 초품>

     

    '불생불멸, 불상부단, 불일불이, 불래불거'라는 위의 게송은 열반(涅槃)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것인데, 열반은 원래 생(生)하는 것도 멸(滅)하는 것도 아니므로, 연기(緣起)하여 생(生)한 일체의 모든 법은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는 것으로서 어떠한 자성(自性)이 있지 않은 공(空)임을 표명한 것입니다. 이 여덟 가지 부정, 즉 팔불(八不)은 중생들의 수많은 미혹된 견해를 대표하는 생(生)·멸(滅)·단(斷)·상(常)·일(一)·이(異)·래(來)·거(去)의 여덟 가지 견해를 부정한 것으로서 외도들의 사견(邪見)과 불교 내의 유부(有部) 등의 유견(有見)을 척파한 것입니다.  즉, 일체 존재가 저절로 생긴 것이라거나, 어떤 절대자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거나, 또는 미세한 물질들이 화합하여 생긴 것이라는 등, 중생들이 여러 삿된 견해에 빠져 바른 법을 보지 못하므로, 용수보살이 이러한 편견을 타파하기 위하여 팔불설(八不說)을 주로 한 <中論>을 지어 공사상(空思想)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가 주장한 공(空)은 단순히 모든 것을 부정하는 허무주의도 아니고, 도피와 체념에 사로잡힌 회의주의도 아니며, 결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무(無)도 아닙니다. 그의 공사상의 근저에는 어디까지나 연기(緣起)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곧 연기(緣起)하여 생겨나는 일체의 법은 고유한 본성 즉 자성(自性)이 없으며, 고정적인 자성이 없으므로 공(空)하다고 설한 것입니다. 그는 이와같이 공사상에 근거하여  그 당시의 잘못된 사상계를 비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불교의 근본진리인 중도를 천명하였습니다.

     

    衆因緣生法  我說卽是無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법을 나는 곧 무(無)라고 하고,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또한 가명(假名)이라고 하며, 중도(中道)의 뜻이라고 하느니라. -<중론 24품>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법'이란 일체제법이 연기(緣起)하여 생함을 말합니다. 이 연기법은 그 본성이 무(無), 즉 공(空)한데 아주 아무 것도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연기(緣起)하고 있으므로 가(假)인 것입니다. 연기를 하면서 공하고, 공하면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공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며[非空非假] 동시에 공이고 거짓[亦空亦假]이며 이것이 중도(中道)입니다. 이 공(空) · 가(假) · 중(中)이라는 삼제(三諦)는 전부 원융(圓融)해 있습니다. 즉 모든 연기(緣起)의 내용은 공(空)이지만 가(假)와 중(中)이 모두 내포되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中論>의 삼제게(三諦偈)는 중국에 와서 불교교리를 조직하는 데 있어서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교의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삼제게의 내용을 해석한 것으로 후대에 유명한 '삼제원융(三諦圓融)'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삼제원융이란 즉공(卽空)·즉가(卽假)·즉중(卽中)으로 즉(卽)은 공(空)과 가(假)와 중(中)이 한 곳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공과 가와 중은 서로 포용하므로 일체의 만법 자체가 그대로 공하고, 공한 그대로 연기하며, 연기한 그대로가 공도 아니고 가도 아니면서 또한 그대로 공이고 가라고 합니다. 이것이 곧 중도(中道)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삼제원융'이라는 삼제게의 의미인데, 후에 천태종의 교리를 조직하는 근본교의가 되었습니다. 여하튼 이 삼제게 사상에 입각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천태는 물론 화엄도 여기에 들어있고 대승의 일승원교(一乘圓敎)사상이 모두 다 여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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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룡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법'이란 일체제법이 연기(緣起)하여 생함을 말합니다. 이 연기법은 그 본성이 무(無), 즉 공(空)한데 아주 아무 것도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연기(緣起)하고 있으므로 가(假)인 것입니다. 연기를 하면서 공하고, 공하면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공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며[非空非假] 동시에 공이고 거짓[亦空亦假]이며 이것이 중도(中道)입니다. 이 공(空) · 가(假) · 중(中)이라는 삼제(三諦)는 전부 원융(圓融)해 있습니다. 즉 모든 연기(緣起)의 내용은 공(空)이지만 가(假)와 중(中)이 모두 내포되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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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색(色)에서 싫어하는 뜻을 내고, 수(受)에서도 싫어하는 뜻을 내고, 식(識)에서도 싫어하는 뜻을 낸다. 싫어하는 뜻을 내는 까닭에 싫어하여 떠난다. 탐욕을 떠나는 까닭에 해탈한다.」 - 남전대장경 제13권 상응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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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식사상(唯識思想)2] * 심식설(心識說)의 근원 유식학을 구성하는 주요 사항 가운데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있습니다. 실로 유식학은 이 아뢰야식을 구심점으로 하여 집약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이 아뢰야라는 말이 불교에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가에 대해일부에서는 대승불교에 들어와서 창안되어 사용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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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룡 물질적인 사대(四大:지·수·화·풍)로 구성된 육신에 대해서는 더러 혐오하여 떠나려고 하고 해탈하려 하지만, 정신적인 심·의·식(心·意·識)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심의식은 마치 수풀 속에서 원숭이가 이리 저리 옮겨 다니듯이 아침에 변하고 저녁에 바뀌어 잠시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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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룡 떠나고 버림에 해탈! 예 맞습니다.천박해서 버림의 결정과 떠남의 판단을 못함에서 오는 속세의 속인이 되어 혼자 잘난척하고 살고 있을 뿐이지요. 오로지 갈고 닦고 세공해야 할 심,의,식의 갈음질에 방황 없이 정진함만 어렵다고 푸념하고 있거든요. 저부터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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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룡 Kim Youngsoo 님 깊은 내공의 심연을 느낌니다. 이렇할진데 정치적 꼼수라던지 사회적 비겁행위라던지 범죄적 요소를 참지 못함은 이미 이들과 다른 길을 찾는, 동일시 되는 탐구차원을 찾는 경계라고 생각됩니다. 좋은 벗을 만나 즐겁습니다. 좋은 휴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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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룡 박선희님 ^^ 서로의 같은 공감대 좋은 벗을 만난 기쁨이 큽니다.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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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룡 이길용님께서 "좋은 벗 만나 즐겁다" 하심에 마음 가누기가 그렇습니다. 오늘의 과찬에 하루를 또 살아온 보람 넉넉하게 있답니다.의기도 살아 솟는답니다. 영광이옵니다. 아름다운 오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