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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4일 Facebook 이야기

woody7553 2012. 12. 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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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Francesca-paola Ric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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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를 바로 봅시다](9) 성철스님 법어집에서.

    http://cafe.daum.net/BRtemple?t__nil_cafemy=item
    *일승법(一乘法)과 방편(方便)
    十方國土中 시방 국토 가운데
    唯有一乘法 오직 일승법만 있고
    無二亦無三 이승도 없고 삼승도 없는데
    除佛方便說 부처님의 방편설은 빼놓는다.
    쉽게 말하자면 온 시방세계는 이대로가 항상 있는 세계[常住法界]이고, 걸림이 없는 세계[無碍法界]이고, 하나의 참 진리의 세계[一眞法界]인데 이것을 무장애법계(無障碍法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일승법(一乘法)이라고 합니다.

    우리 불교가 있으므로 무애법계, 무장애법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본시 이 시방세계라 하는 것은 일진법계, 무애법계, 무장애법계인데 부처님이 그것을 바로 아시고 그것을 중생에게 소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방세계라 하는 것은 전체가 일승(一乘)뿐 입니다. 무애법계, 일승법계 뿐이지 그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딴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시고, 온갖 말씀을 다 하셨습니다. 일승 이외의 법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것은 딴 것이 아니라, 못 알아들으니까 방편(方便)으로 이런 말씀 저런 말씀을 하신 것이지 그것이 실설(實說)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부처님 법문을 알려면 일승법계(一乘法界)의 소식을 알아야만 부처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지 그 외의 방편설(方便說)로는 모릅니다. 방편설(方便說)은 실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처음에 「화엄경」을 설한 것이 일승법문(一乘法門)이고 최후에 또 「법화경」을 설한 것이 일승법문(一乘法門)인데, 화엄과 법화 중간에 40여 년 동안 설(說)한 그것은 전부 다 방편설(方便說)입니다. 거기에 가면 온갖 법문이 다 있습니다. 온갖 것이 다 있는데 그것도 실제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 키우기 위해서는 안 필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승(一乘)이란 것은 과연 어떤 것이냐, 이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것은 실법(實法)이니까. 일승(一乘)이란 화엄 ․ 법화가 일승(一乘)을 대표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화엄과 법화는 어떤 진리에 서 있는가? 화엄과 법화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 「법화경」에 대해 천태지자선사가 정의한 말씀이 있습니다.
    「원교라 함은 중도를 나타낸 것이니 양변을 막아버렸다.<圓敎者 此現中道 遮於二邊>」

    「마음이 밝고 깨끗하면 양변을 쌍으로 막고, 정히 중도에 들면 이제를 쌍으로 비춘다.<心旣明淨 雙遮二邊 正入中道 雙照二諦>」

    양변을 여읜다, 초월한다는 이 말은 비유를 하자면 하늘의 ‘구름이 걷혔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양변이 서로 통한다 하는 것은 ‘해가 드러났다’ 이 말입니다. ‘구름이 걷혔다’하면 으레 ‘해가 드러났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 ‘해가 드러났다’고 하면 ‘구름이 걷혔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遮)’와 ‘조(照)’가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쌍차쌍조(雙遮雙照)! 쌍으로 걷히고 쌍으로 초월하고! 쌍으로 비치고 쌍으로 통하고!

    그래서 일승원교(一乘圓敎), 중도(中道)라 하는 것은 모든 차별을 초월하여 모든 차별들이 원융무애하여 서로 융통자재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 세계를 일승원교라 하는 것입니다.

    *「화엄경」에 대해 청량스님이 <화엄청량소>에서 정확히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곧 비추며 막고 곧 막으며 비추니, 곧 쌍으로 비추며 쌍으로 막아서 둥글게 밝아 일관하면, 이 종취에 계합하는 도다.<卽照而遮 卽遮而照 雙遮雙照 圓明一貫 契斯宗趣>」

    근본요지는 어는 곳에 있느냐 하면, 화엄종취라는 것은 딴 것이 아니고 쌍차쌍조(雙遮雙照)에 있다 그 말입니다. 쌍차쌍조(雙遮雙照)라 하는 것을 바로 알면 이 화엄종취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청량국사의 화엄종취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러면, 이상에서 본 화엄 ․ 법화의 일승원교가 우리 불교의 구경(究竟)이냐! 그게 아닙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인 선(禪)이란 것이 있습니다. 일승(一乘)이니 하며 아무리 큰소리 해대지만 이것은 말에만 그칠 뿐, 말! 말이지 실(實)은 아닙니다. 말 가지고는 해탈 못한다 말입니다. 말 가지고는!

    「손가락을 가지고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손가락은 보지 말라.」

    일승불교가 ‘실(實)이다, 실이다!’ 해쌌는 이것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은 아닙니다. 그러니 여기에 얽매여도 안 됩니다. 그러니 오직 참으로 마음의 눈을 뜨려면 참선(參禪)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노력해서 손가락만 보지 말고 달을 봐야 되겠다 이것입니다. 예전에 늘상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부처님과 조사(祖師)를 원수같이 보아야만 바야흐로 공부할 분(分)이 있도다.」

    이만했으면 방편(方便)이 무엇이다 하는 것, 그에 대해 취하고 어떻게 해야겠다는 것을 우라가 다 알 수 있게 될 것이니, 강원에서는 경(經) 부지런히 익히고, 선방에서는 화두(話頭) 부지런히 해가지고 어떻게든 자기 하는 공부를 하루 바삐 성취하도록 노력합시다.

    문창아 교수님 법문(부산 대연동 법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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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를 바로 봅시다](9) 성철스님 법어집에서.

    http://cafe.daum.net/BRtemple?t__nil_cafemy=item
    *일승법(一乘法)과 방편(方便)
    十方國土中 시방 국토 가운데
    唯有一乘法 오직 일승법만 있고
    無二亦無三 이승도 없고 삼승도 없는데
    除佛方便說 부처님의 방편설은 빼놓는다.
    쉽게 말하자면 온 시방세계는 이대로가 항상 있는 세계[常住法界]이고, 걸림이 없는 세계[無碍法界]이고, 하나의 참 진리의 세계[一眞法界]인데 이것을 무장애법계(無障碍法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일승법(一乘法)이라고 합니다.

    우리 불교가 있으므로 무애법계, 무장애법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본시 이 시방세계라 하는 것은 일진법계, 무애법계, 무장애법계인데 부처님이 그것을 바로 아시고 그것을 중생에게 소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방세계라 하는 것은 전체가 일승(一乘)뿐 입니다. 무애법계, 일승법계 뿐이지 그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딴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시고, 온갖 말씀을 다 하셨습니다. 일승 이외의 법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것은 딴 것이 아니라, 못 알아들으니까 방편(方便)으로 이런 말씀 저런 말씀을 하신 것이지 그것이 실설(實說)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부처님 법문을 알려면 일승법계(一乘法界)의 소식을 알아야만 부처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지 그 외의 방편설(方便說)로는 모릅니다. 방편설(方便說)은 실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처음에 「화엄경」을 설한 것이 일승법문(一乘法門)이고 최후에 또 「법화경」을 설한 것이 일승법문(一乘法門)인데, 화엄과 법화 중간에 40여 년 동안 설(說)한 그것은 전부 다 방편설(方便說)입니다. 거기에 가면 온갖 법문이 다 있습니다. 온갖 것이 다 있는데 그것도 실제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 키우기 위해서는 안 필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승(一乘)이란 것은 과연 어떤 것이냐, 이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것은 실법(實法)이니까. 일승(一乘)이란 화엄 ․ 법화가 일승(一乘)을 대표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화엄과 법화는 어떤 진리에 서 있는가? 화엄과 법화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 「법화경」에 대해 천태지자선사가 정의한 말씀이 있습니다.
    「원교라 함은 중도를 나타낸 것이니 양변을 막아버렸다.<圓敎者 此現中道 遮於二邊>」

    「마음이 밝고 깨끗하면 양변을 쌍으로 막고, 정히 중도에 들면 이제를 쌍으로 비춘다.<心旣明淨 雙遮二邊 正入中道 雙照二諦>」

    양변을 여읜다, 초월한다는 이 말은 비유를 하자면 하늘의 ‘구름이 걷혔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양변이 서로 통한다 하는 것은 ‘해가 드러났다’ 이 말입니다. ‘구름이 걷혔다’하면 으레 ‘해가 드러났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 ‘해가 드러났다’고 하면 ‘구름이 걷혔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遮)’와 ‘조(照)’가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쌍차쌍조(雙遮雙照)! 쌍으로 걷히고 쌍으로 초월하고! 쌍으로 비치고 쌍으로 통하고!

    그래서 일승원교(一乘圓敎), 중도(中道)라 하는 것은 모든 차별을 초월하여 모든 차별들이 원융무애하여 서로 융통자재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 세계를 일승원교라 하는 것입니다.

    *「화엄경」에 대해 청량스님이 <화엄청량소>에서 정확히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곧 비추며 막고 곧 막으며 비추니, 곧 쌍으로 비추며 쌍으로 막아서 둥글게 밝아 일관하면, 이 종취에 계합하는 도다.<卽照而遮 卽遮而照 雙遮雙照 圓明一貫 契斯宗趣>」

    근본요지는 어는 곳에 있느냐 하면, 화엄종취라는 것은 딴 것이 아니고 쌍차쌍조(雙遮雙照)에 있다 그 말입니다. 쌍차쌍조(雙遮雙照)라 하는 것을 바로 알면 이 화엄종취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청량국사의 화엄종취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러면, 이상에서 본 화엄 ․ 법화의 일승원교가 우리 불교의 구경(究竟)이냐! 그게 아닙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인 선(禪)이란 것이 있습니다. 일승(一乘)이니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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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용 <3 <3 VERY BEAUTIFUL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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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용 thanks you LisaMarika Lu wish fou you well being and happioness have a nice ti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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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용 thanks much for your kindness Ursula Smeets for you good days ^^